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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와 거듭남

요 3:1-15

우리가 잘 아는 이 보배로운 요 3:16은 바로 전에 언급된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 내용을 이해해야 그 본래의 뜻이 더 잘 이해됩니다.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많은 표적을 행 하셨는데 이를 보고 찾아온 것입니다. 주께서 무슨 표적을 행 하셨는지는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대화가 좀 묘하게 진행됩니다. 대화는 하는데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런 대화를 그대로 소개함으로써 1:5에 말한 것과 같이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라는 말의 실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 하는지, 또 그저 열심히 좋은 방법으로 가르쳐 주시면 될 일이지 왜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드러내고자 합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2절,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유월절에 예수께서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니고데모를 매우 당황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3절,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당신들이 지금 나를 안다고 하셨소? 그러나 당신(들)이 안다고 하는 것은 진실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진실로 진실로”가 앞에 붙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나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에는 “과도한 것” 혹은 안 해도 될 말 즉, 일종의 “잉여 적 표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많이 씁니다. 진짜 진짜, 절대로 등과 같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좀 더 강력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안 해도 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님은 그런 의도에서 이런 말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주께서 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지 알려면 니고데모의 말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는 “나는”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는”이라고 합니다. 지금 니고데모가 여러 명과 함께 온 것이 아니라 혼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라고 할까요? 이것은 니고데모와 같은 시각으로 예수님의 표적을 본 복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니고데모: 최 상위에 속한 인물

그를 소개한 것을 보면 “바리새인 중 니고데모”라고 했습니다(1). 바리새인은 정통 유대인이고 모세 오경에 있는 하나님이 율법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남다른 열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으로 가입하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당시 전국에 6000 명 정도 있었는데 그 기준이 매우 엄격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라는 이름은 유대인의 전통적 이름이 아니고 헬라식입니다. 정통 유대인으로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당시 헬라식의 교육을 받은 상당한 엘리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의 학문과 헬라의 학문을 두루 섭렵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절에는 예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지도 층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공의회원이라 하였는데 이는 당시 유대인의 모든 삶의 원리를 주관하는 산헤드린 공의회를 말합니다. 이 사람이 “우리”라고 하는 사람들은 니고데모가 동료라고 기꺼이 부를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대의 입법 사법 행정 권을 다 가지고 있는 산헤드린 공의회원 중에서도 그 모임을 주도해 나가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겠지만 비록 소수라도 최정예 소수를 말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안다"라고 하였을 때 이것은 일반 사람들이 그저 보고 느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검증을 마친 것이라는 말입니다. 니고데모의 이 말에는 자신감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안다"라는 “들림 없이 그렇다는 일종의 확신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주님이 기분이 좀 좋아야 합니다.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긴 하구나”

그런데 주님은 “당신들이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에서 “본다”는 것은 니고데모가 “안다”고 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이 나중에 고백한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그동안 내가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눈으로 보나이다”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본다>입니다.

거듭남

주께서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의 세계에 대하여는 아는 것 같아도 아는 것이 아니라"라는 말씀을 하시자 니고데모는 거듭남에 대하여 질문을 합니다. “다 큰 사람이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아예 모든 것을 다 까놓고 말해보자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거듭남이 그런 말이겠습니까?

이 “거듭남”이라는 말을 니고데모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 당시 종교적 집단에 가입을 하면 “세례 혹은 침례”를 받습니다. 기독교만 세례를 받는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 주로 침례를 하고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물을 뿌리는 세례를 했습니다. 이것은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입니다. 물에 잠긴다는 것은 이전의 나는 죽었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새로 생명을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단체는 이제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한동안 우유를 마시는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니고데모가 유대의 지도자로서 그 나라 안에 어떤 종교단체들이 있으며 그들의 어떤 의식을 행하는지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거듭남”에 대하여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질문을 할까요?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최고의 학문을 섭렵한 사람이 “다 큰 사람이 어머니 배에 어떻게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좀 더 고상하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이 거듭남에 대하여 속 시원하게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고상하고 추상적으로 질문을 하면 자신이 좀 더 그럴듯한 이미지로 상대에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이런 질문은 역시 추상적인 대답 밖에는 듣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 서로가 이렇다 할 결실도 없이 말잔치만 하다가 끝나는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니고데모는 그동안 듣고 보았던 거듭남에 대하여 뭔가 회의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식을 행하면서 자신이 거듭났다고 선언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물론 변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철없던 때와 다르게 변할 수 있습니다. 성격도 좀 변하는 것 같고 취미도, 또 추구하는 것도 바뀔 수 있고 정치적 성향도 진보에서 보수로 혹은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인간의 본질적인 것을 형성하고 있는 그것이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들 역시 이것 때문에 애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은혜받은 사람답지 못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내 영혼이 애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가 봐 왔던 거듭 났다고 선언한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역사와 무관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거듭남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성공적인 변화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의지라는 것이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하고 견고한 것"이 아닙니다. 니고데모는 이런 것을 수없이 봐왔을 것입니다. 새로워졌다, 거듭 났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변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습니다. 물론 변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변적인 것들입니다.

6절을 보면 주님께서 그의 질문을 간파하셨습니다. “니고데모, 그런 식으로 다시 낳아봐야 백 번 천 번을 거듭나도 거듭난 것이 아니네.” 우리는 가끔 어떤 일에 이런 말을 합니다. “그건 죽었다가 깨어도 못할 것이다.” 설사 다시 어머니 배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은 즉, 죄인은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5절에 말씀하십니다. 또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봐 왔을 거듭남이라는 것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인데 나쁜 것을 떠나 새롭고 선한 것으로 가는 변화가 아니라 나쁜 것을 떠나 또 다른 조금 덜 나쁜 것을 선택하는 그런 변화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비밀

창조과학회 김명현 박사의 설명을 잠깐 인용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이 거듭남은 육신이 무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 살아있는 동안 이루어지는 것임으로 자연 출생과 같은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고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난자가 생성되어 살아 있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죽어서 배출됩니다. 그러나 그 난자에 특별한 일 즉, 외부에서 정자가 들어오면 생명이 태여 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외부로부터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새로운 차원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저 심판과 저주 아래서 떠나야 합니다.

진정한 변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참된 거듭남은 물과 성령에 의한 것입니다. “물과 성령”이라 할 때 “과(and)”는 여기서는 “곧” 혹은 “즉”이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고대 헬라어의 접속 부사 “카이(kai)”는 반드시 영어의 and에 해당하는 의미 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물이 상징해 오던 것 바로 그것은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물은 씻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물 같은 것으로는 원죄가 씻겨 나가지 않습니다. 물에 잠기는 것이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그런다고 옛사람이 죽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역사 하셔야만 죄가 씻어지고 마음 자체가 새로워 집니다. 렘 31:31-33에는 “새 언약”을 말씀하시면서 “새 마음”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욜 2:28 여호와께서 큰일을 보여주신다는 말씀 뒤에 “새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행 2장 오순절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야 비로소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에 다하여 알기 시작합니다. 보기 시작하고 듣기 시작합니다. 완강한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말씀의 씨가 떨어져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사람의 중심에서 활발한 생명 작용이 시작됩니다. 심령이 가난해지고 애통 하며 온유해 집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말라 생수를 찾습니다. 살아나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고 영화로운 샘영과 연합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근거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셔서 내주 하심으로 참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를

주께서는 이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고 십자가에서 우리 죗값을 대신 갚으셨습니다. 이것을 대속이라 합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를 지셔야 만합니까?

니고데모가 주님을 밤에 찾아왔다고 말합니다(2).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가 신분과 관련하여 체면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밤에 온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밤”이라는 말을 반드시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는 기간을 가리키는 말로 만 쓰지 않습니다. “밤"이라는 말에 의미를 좀 더 부여합니다. 가룟 유다가 주님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 시 주께서 주시는 떡 조각을 받고 나갔더니 "밤이더라"라고 기록합니다(요 13:30). 그것이 밤인지 낮인지 친절하게 보도할 필요가 있습니까?

니고데모를 비롯한 '그들'은 매우 영특하고 재빨리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너무 어두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어두움에 빛이 아무리 비추어도 도무지 이해를 못 합니다. 니고데모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의 니고데모가 힘을 합하여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오해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도무지 읽어내지를 못합니다. 철저하게 삐뚤어져 있고 철저하게 어두워 그 무엇도 먹혀 들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을 어렵게 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보다 더 쉽게 하늘의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이 또 있습니까?

니고데모는 9절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라고 되 묻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땅의 일을 말해도 믿지 않는데 하늘의 일을 어떻게 믿겠느냐(1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임을 밝히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유일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이 대화 중 니고데모에게 하신 결정적인 말씀은 “하늘의 일을 설명해도 넌 모른다”입니다. 8절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소리는 듣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거듭난 자도 그와 같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있다는 것은 알 것이란 뜻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하늘의 비밀 즉 진리를 설명하셔도 니고데모는 “어디서 부는 바람인지, 뭔가 있기는 한 것 같고 느껴질 것도 같은데 여전히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분명히 있지만 그 과정을 잘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여전히 어두움입니다. 눈에 보여주면 놀라기는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먹여 주면 배부르다고 좋아하기는 해도 그 참된 의미를 모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 하는도다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이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 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3:11,12)?"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모르는 채로 둡니까?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 들으면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이 이렇게 어두운 이유는 죄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정상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은 그를 이 죄에서 구원해내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려면 그 죗값을 대신 지불하고 죄 아래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냥 두면 모두가 다 멸망할 수밖에 없으니 그들 대신 지옥의 고통을 담당 하심으로 구속(救贖)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에 일어난 일이고 유월절이 지나고 무교절이 시작된 다음 날 즉 초 칠 절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바로 그 약속의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임하여 하루에 삼천 명씩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최선

십자가는 죄인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어디서도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던 최선과 너무도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선”이란 이런 것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 자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십니다. 남겨두는 것도 없으시고 아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환하게 보입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삶을 최선을 다해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실(信實)이란 처음과 나중이 다르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신다는 것은 그분의 전지, 전능, 그리고 한없는 사랑과 긍휼히 아낌없이 베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로 정 반대의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우리 느낌이라는 것은 정말 근거 없이 변덕을 부릴 때가 많습니다. 십자가를 보여주시는 말씀을 믿으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것이 아닌 것같이 이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취급받고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현실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손이 짧아 그렇게 밖에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헤아일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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