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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을 위로 하라

#위로 #생명 #새

내 백성을 위로 하라 사40:6-8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위로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위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어떤 것인지 또 이것을 어떻게 받는 것인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자들

<하나님의 위로>라 하면 저에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은 엘리야입니다(왕상 19장). 이세벨을 피하여 도피하던 중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였던 선지자입니다.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선지자가 여기서는 기진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로뎀 나무 아래 쓰러진 엘리야에게 천사가 와서 ‘어루만지며’ 깨웁니다. 다른 역본에는 ‘만지다(touch)’인데 우리 성경에는 ‘어루만지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는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물과 숯불에 구운 떡을 먹고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40주야를 가게 됩니다.

지금 선지자가 있는 곳은 브엘세바 근처입니다. 거기서 (만약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있다면) 호렙까지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사 십 일이 걸렸다는 것은 비교적 평탄한 길을 피하여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의 험난한 길을 선택 하였다는 뜻일 것입니다. 검문 검색이 철저 했을 것을 생각하면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그런 것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지쳐 쓰러져 몸을 가누기 어려웠던 자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에서는 그것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다윗도 수 많은 정적에 둘러싸여 고난을 많이 당한 자 입니다. 수 많은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긴 자 입니다. 때로 그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혀가 입 천장에 달라붙었다 … 뼈를 하나씩 다 셀 수가 있다 … 어떤 분은 “뼈마디 마디 마다 쑤신다”고 고통을 호소 하기도 하는데 바로 그런 극한의 고통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시 18편 등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등불을 켜 주셔서 자신의 발이 마치 암 사슴 발처럼 절벽을 뛰어오를 수 있다” 또 “적군 속을 종횡무진으로 달릴 수 있다” “내가 놋 활을 당길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시18:28-34). 이 역시 하나님의 위로 덕분입니다.

시23:5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원수 목전에서(보라는 듯이) 상(床)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들의 엄청난 송사가 하나님께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부르십니다. 이제는 그것에 대한 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벌을 내리는 대신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VIP에게나 하는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시고 나의 잔을 가득하게 채워 그동안의 수고를 치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이상의 위로는 없습니다. 다윗은 이런 위로를 언젠가 한 번 정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간헐 적으로 혹은 수시로 받은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위로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 내용

사40:1에는 “위로 하라, 위로 하라 내 백성을 …” 이렇게 시작됩니다. ‘위로 하라’가 두 번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니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절에는 그 위로의 내용을 ‘외치라’고 합니다. 큰 소리로 고함을 치라는 뜻입니다. 9절에는 이것을 ‘산 위에 올라가서 외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이 말씀은 전하는 자가 쭈볏거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외치기는 하는데 정말로 그대로 될 지 안될지 몰라서 망설이거나 자신 없어 할 것이 아닙니다. 둘째는 이 내용을 듣지 못하는 자가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일에 정신 팔리면 이런 내용을 잘 듣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자들도 다 들을 수 있도록 산 위에 올라가서 외치라고 합니다.

전해야 할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지금 이사야가 전하는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 다시 말해서 이 말씀의 가장 주된 청자(聽者)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 70여 년을 거의 다 채운 자 들입니다. 사실 이들보다 이사야는 200년 정도 앞선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예레미야는 이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기 전부터 그 포로 생활이 70년이 지난 후 마쳐 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들이 만일 이 말씀을 확실하게 믿고 있었다면 시간이 갈수록 희망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그 백성 앞에서 누군가(지도자)가 이사야의 글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시137편은 이들이 바벨론 포로기 때 지어진 것인데 여기에는 매우 우울하고 칙칙한 노래가 있습니다. “바벨론 어느 강가, 어떤 버드나무 가지에 수금을 걸었다”고 합니다. 바벨론에 있는 자들이 그들에게 유대 노래를 들려 달라 할 때 “지금 내가 노래 부를 기분 이겠나?” 하면서 거절 하였다고 합니다(137:3). 이들은 기쁨을 거절합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연주 하면서 노래하던 자들이 지금은 좌절과 실망 속에서 수금을 연주하며 노래하기를 포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이런 자들에게 임합니다. 당연히 이미 약속하신 말씀을 확인시켜 주시는 방법으로 위로가 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다 풀과 같고 꽃과 같다 그리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사40:6).” 그런데 이것이 지금 이런 슬픔 속에 있는 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말 일까요? 중병으로 입원한 친구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면 이것이 그에게 위로가 될까요? 매우 깊이 있는 친구면 혹시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분에게 문상을 하러 가서 이렇게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위로가 될까요? 조심스러워서 이렇게는 말을 못할 것 같습니다.

성경은 허무주의를 말하는가?

그 다음 문장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우리 성경에는 “왜냐하면”이라는 부사가 빠져 있습니다. 그 대신 그 원인을 나타내는 말로 “붊이라(불기 때문)”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다 풀과 같고 꽃과 같은데 그것이 마르고 시드는 것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불기 때문이라”입니다. 여기서 진정으로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은 풀과 꽃이 마르고 시든다는 사실 보다는 “여호와의 기운이 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기운”은 독립적으로 쓰일 때는 숨, 호흡, 바람 … 등으로 번역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기운’이라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호흡 즉, 성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루아흐(ruah)'라는 말입니다.

나의 무성한 풀이 마르고 나의 아름다운 꽃이 시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즐겁지 않습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심한 경우에는 박탈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고 매우 억울하고 괴로울 수 있습니다.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자연법칙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서운 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를 잘 소화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상처가 난 감정은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못살게 굴 수도 있습니다.

성급한 사람은 이 구절을 보면서 “모든 종교는 길이 다를 뿐 목적지는 같다”는 결론을 내릴 지도 모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반야심경)’에도 이와 매우 유사한 말들이 있습니다. <마하>는 넓다는 뜻이고 <반야>는 불교에서 말하는 참 진리 혹은 지혜의 근본, <바라밀다>는 완성 혹은 목적지에 이름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본 “색즉시공(色卽是空)공즉시색(空卽是色)”이 나옵니다. ‘색’은 몸을 비롯한 보이는 물체, ‘즉’은 ‘곧’이라는 뜻입니다. ‘시’는 ‘-이다’라는 BE 동사, ‘공’은 ‘텅 빈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결합된 것으로 그것은 곧 텅 빈 것과 같다는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무엇이 대단한 것같으나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있다가도 없는 것은 모든 자연이 다 그렇게 돌아가는 법칙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그렇게 하는 것” 즉,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풀이 무성한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고 마르는 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아니면 우리는 우리의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들 때 위로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다시 한번 떠올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실 뿐 아니라 공의로우십니다. “의(義)”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나 결정이 항상 옳다는 것이고 “공의”는 이를 집행 하심에 있어서 모든 것이 옳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의와 공의는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속성(屬性)인 ‘사랑’에 근거합니다. 모든 것은 헤아릴 수 없는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가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엡3:19). 내 풀을 무성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이며 그 풀을 마르게 하시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지대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잘 헤아릴 수는 없어도 내 꽃이 지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모든 것이 내게 유익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통기한이 지나서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꽃이 시들어야 열매가 오는 것

얼마 전 TV에서 목화 재배에 대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예쁜 목화 꽃이 지면서 마치 커다란 커피 원두처럼 생긴 갈색 열매가 맺히고 그 안에 하얀 목회가 들어 있었습니다. 해설자가 하는 말이 “목화 꽃이 지면서 열매가 맺힌다”고 하였습니다. 사과도 그렇습니다. 꽃이 져야 열매가 옵니다. 거의 모든 것이 다 이런 절차를 거치는 것 같습니다. 꽃이 시들기를 거부하면(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열매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풀도 마르면 누군가에게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거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선조들이 거름이 되어 주셨고 교회도 선배들이 거름이 되어 주셔서 오늘 우리가 풍성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과정을 적절하게 주장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때 맞추어 이렇게 섭리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에 의한 깊은 깨달음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15장에 부활을 증거하며 계속 “심고(심는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고전 15:35-49). 죽으면 땅에 묻히는 줄만 알던 사람들에게 또 다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은 묻는다고 하고 생명이 있는 씨 같은 것은 심는다고 합니다.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드는 것도 <말씀>이 아니면 그 안에 있는 신비한 생명작용에 대하여 우리는 모르고 살아갈 것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8)!”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들에게 그 뜻을 말씀하시고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최선을 다해도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그냥 신묘한 분위기 속에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내 마음 안으로 스며 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겠으나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그 위로가 어떻게,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 우리에게는 말씀이 있습니다.

‘위로’의 의미

사 40:1의 “위로”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좀 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보통 국어 사전에는 “아픈 마음이나 슬픈 마음을 달래 줌”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위로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같은 어휘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의미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사40:1의 위로는 히브리어로 나함(naham)입니다. 히브리어의 조상 정도 되는 아카드어에서 이것은 살아있는 동물이 “푸- “하고 숨을 크게 내쉬는 소리라고 합니다. 누군가 숨이 멎었습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하였는데 잠시 후 그가 “푸 –“하고 숨을 내쉬면 살아났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의 말을 우리는 위로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있습니다. 72명의 신학자이며 언어학자들이 모여서 그 작업을 하였습니다. 히브리 인도 포로 생활 등으로 인하여 모국어를 잊은 사람들이 있고 또 당시의 공통어가 헬라어였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보급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70인 경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사40:1의 ‘나함’을 ‘파라칼레오(parakaleo)’ 로 번역합니다. ‘파라(para)’는 ‘옆으로’ 그리고 ‘칼레오(kaleo)’는 ‘부르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로 얼굴을 돌려 버렸던 자를 다시 불러 원상보다 높은 단계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죄 많은 다윗을 불러 상을 차리시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파라칼레오’라는 동사가 명사로도 쓰입니다. 요14:16에서 예수께서 승천을 암시 하시면서 하신 말씀, “내가 가면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리니…” 보혜사(保惠師)는 어떤 사람의 사정을 다 알고 그를 가장 유익하게 인도하시는 보호자와 같은 말입니다. 이 보혜사가 헬라어로 “파라크레토스”입니다. 보혜사는 성령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하나님의 위로는 마음을 달래서 기분을 전환하는 정도가 아니라 막힌 숨을 트이게 하는 생명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위로는 어떤 것은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한 위로는 그 한계가 분명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힘이 되고 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분명한 진리와 사실에 근거합니다. 이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위로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말씀”을 수단으로 합니다. 오늘 이 구절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말씀으로 무한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영원히 서있는 말씀의 예

첫째,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게 하려 함이라(렘31:31)” 이 말씀과 사실상 같은 의미의 구절은 성경 여기 저기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옛날 왕조 시대에는 왕(종주)와 백성은 계약 관계에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왕이 요구하는 것을 충실히 수행하면 왕은 그 백성을 철저히 보호합니다.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십니다. 인간 왕은 최선을 다해도 그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으나 전능하신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이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때로 나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동 서 남 북으로부터 화살이 날아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느낌이 그런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사실은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나 허용 없이는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체험적으로 알게 될 때 우리는 빗발치는 적의 화살 속에서도 평강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십니다. 이 역시 성경 전체에 진술되어 있습니다. 자녀는 혈육 관계를 의미합니다. 왜 이런 비유어를 사용 하실까요? 혈육이란 그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한 연대가 있습니다. 눅15장 탕자의 비유에서도 이것은 잘 나타납니다. 집 나갔던 허랑 방탕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낭비 하듯 그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탕자의 형이 발칵 화를 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런 아이는 이렇게 대우를 해주고 집에서 열심히 일한 내게는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 주셨습니까? 만약 그 아버지가 그 탕자 아들에게 적당히 하였으면 큰 아들은 이렇게 발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 옷을 입혀라, 가락지를 끼워라, 새 신을 신겨라, 송아지를 잡으라… 이 모든 것이 과도합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답은 하나 입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을 풍성하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잘 알게 된 사람은 하나님을 봉사하는 일도 낭비 하듯 하게 됩니다. 사랑에는 이런 낭비처럼 보이는 요소가 있습니다.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아기들을 왜 안고 다닐까요? 충분히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아기를 왜 엄마가 무엇을 먹여 줄까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 표현에 있어서 계산이나 절제가 잘 안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발을 머리카락으로 씻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화를 냈습니다.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자기 집에 귀한 손님이 오면 기름을 그 발에 충분히 바르고 수건으로 한참 동안 싸서 그 기름이 스며 들게 합니다. 마리아는 고가의 향유를 주님 발에 붓고 수건 대신 머리카락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한참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과하게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것이 절대로 과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너무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왕이 자기가 사랑하는 자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보여주신 사랑도 그렇게 증거 합니다. 집 나가서 어디서 얻었는지도 모르는 자식을 낳는 여인을 도대체 몇 번이나 찾아가 돌아오라고 권합니까? 이것이 인간 세상에서 있을 법한 일인가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철저히 혼자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같은 사랑에 대하여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말씀을 앞세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느낌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때로 느낌이 맞는 수도 있으나 우리 일생에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크고 넓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헤아리기가 불가능하신 분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하나 둘 씩 이해 가기 시작하는 면이 있습니다.

왜 낭비하듯 은혜를 주셔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나는 마치 밑이 새는 바가지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주시면 남아있는 은혜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낭비 하듯 부으십니다. 새 나가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풍성하게 주셔서 그래도 이 중심에 은혜가 남아 있게 하십니다. 그래도 지금 내 안에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싶다면 그 은혜가 내 안에 남아 있는 증거입니다.

셋째, 행20:28에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긴 설교를 하는데 그 중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언급합니다. “피”란 어떤 사람들은 혐오스럽다, 징그럽다.. 이런 느낌을 갖지만 유대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는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피로 대가를 지불하고 사신 것이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는 아시다시피 예배당(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성도들의 모임으로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저와 여러분을 말합니다. 피(생명)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최종적이며 최고의 가치입니다. 한 사람의 성도는 하나님께 이렇게 귀한 존재입니다. 도대체 저나 여러분이 이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나름대로 귀하긴 하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만한 존재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이 말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런 기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의 악기를 사면 당연히 그 악기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악기가 싸구려 소리를 낸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천하고 무능한 ‘나’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우하시니 ‘다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방향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갈 길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입니다. 이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위로는 우리의 묵은 상처를 치유합니다. 일마다 나타나 방해하는 상처를 치유해야 우리는 영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처럼 40 주야, “그가 가야 할 길을 다 갈 수 있도록”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처럼 절벽을 뛰어오르고 적진을 달리며 놋 활을 당길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하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일에 날마다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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