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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왕하 2:19-22

이스라엘의 역사 중 아합 임금의 시대는 참으로 소망이 보이지 않는 매우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경제 사정이 나빠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시 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바알 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시돈 지역에서 온 자로서 시집 올 때 수 백명 내지 천 명이 넘는 바알의 선지자들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을 바알을 전하는 사명자로 여겼던 것같습니다. 수려한 곳에는 거의 다 바알 신당이 들어 서고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핍박하여 의인들은 대부분 어디론가 숨어 버리는 바알의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시대가 이제 지나가 버린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하나님은 매우 밝게 그 살아계심과 그 영광을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이 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들을 통해 보이시는 참으로 놀랍고도 선명한 역사는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듣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영광을 잘 보지 못하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을 받아 이스라엘 경내를 벗어나 피하여 있어야 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놀라운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계심을 증거 하였지만 사람들에게 조롱 당하였습니다(왕하 2:23-25).

엘리사의 사역 중 그 무지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메세이지 하나를 여기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엘리사가 여리고에 갔을 때입니다. 여리고는 참 아름답습니다. 헤롯의 겨울 궁이 있었던 곳으로 시험 산이라는 여리고의 서쪽에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그 푸르름이 기가 막합니다. 아마 이스라엘에 이런 곳은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의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성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쁨으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이에 엘리사가 새 그룻에 소금을 담아 물 근원에 던져 고쳤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를 면밀하게 관찰하여야 합니다.

성의 위치는 좋으나

이 말은 그 성읍의 입지가 매우 좋다, 환경이 매우 좋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누가 봐도 여리고는 좋아 보입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 할 때 자기에게 경배 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마4;8,9)고 하였던 곳, 시험산 위에서 여리고를 보여주면서 했던 말입니다. 여리고가 척박한 곳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단 풍성해 보입니다. 식물들은 정기가 넘칩니다. 과실이 풍성합니다. "이 성의 위치가 참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소산이 익기 전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이 단어 해당하는 말의 본래 뜻은 "유산되다"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 NIV 에는 the land is unproductuive (이 땅은 생산적이지 못하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 말 성경은 본래의 뜻을 매우 잘 전달해 줍니다. 아예 열매가 맺히지도 않는 것이 아니라 맺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열매가 없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열매가 맺히면 사람들이 기대를 갖습니다. 뭔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소망을 갖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특히 아합 시대와 같은 세상의 특징을 은유(metaphor)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어보입니다. 더 이상 좋을 수 없을만큼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매가 없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없습니다. 살았으나 죽은 것이고 보이기는 하나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공 같은 실패가 계속 반복됩니다. 사람들이 하소연 합니다. 선지자님 이것 좀 고쳐주세요! 왜 바알 선지자에게 이것을 부탁하지 않고 엘리사에게 이렇게 할까요?

무엇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음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으나 분명히 그들은 무슨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우선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했을 것아니다. 모여서 회의도 하고 지식과 지혜를 모으기도 하고 탁월한 전문가의 지도도 받아 봤을 것입니다.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농약도 뿌려보고, 다시 심어보기도 하고, 가지 치기도 해 봤을 것입니다. 뭔가 개선되는 듯해서 잠깐 기뻐도 해 봤겠지만 근본적인 것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바알 선지자에게도 찾아가봤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선지자보다 바알 선지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엇인가 했을 것입니다. 다 잘될 것이라고 믿으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말들은 요즘 유행하는 "희망 고문"이었을 뿐입니다. 희망이 나를 끝없이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희망을 가져야 하고 또 속고, 또 속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현실을 버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물의 근원을 찾아 갔습니다. 물의 근원은 샘( spring )입니다. 여기서 발원하여 이곳 저곳으로 흘러 땅에 물이 공급 되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부분적인 치료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의 근원>입니다. 생명의 근원입니다. 이것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몇 날 며칠을 탐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소금을 뿌려 <고칩니다>. 물을 고친다는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을 어떻게 소금으로 고칠 수가 있습니까? 소금을 뿌렸다고 해서 물이 달라집니까? 소금을 한 가마니를 들어 부었다고 해서 계속 솟아오르는 물에 무슨 영향을 줄수 있습니까? 그런다고 그 물이 짜지기나 하겠습니까? 소금이 무슨 조화를 부리겠습니까? 그동안 물이 싱거워서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졌을까요? 여기서 교훈은 소금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엘리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소금을 뿌렸다면 그 물이 고쳐졌을까요?

물의 근원으로

엘리사의 행위는 바로 이런 모든 근원적 고침(치유)은 하나님 만이 하신다는 것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할 때 모세가 나뭇가지를 던져 넣은 것과 같습니다. 그 나뭇가지가 어떤 화학 반응을 일으켜 쓴 물이 단 물로 바뀐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뭔가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소금도 바로 그렇게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뭔가를 하신 결과" <고쳐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있으면 기도합니다. 참 잘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에 이루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 매우 불 경건 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응답의 보증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며 오히려 기도하지 않은 자들을 안타까워하며 꾸짖으셨습니다.

부분적인 수리나 땜질이나 색칠 정도가 아닌 근원을 고치는 일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동안 보여주신 기적들을 보십시오. 모두가 생명의 그원을 다루는 것임으로 '기적적'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기도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들의 삶이 마치 여리고와 같다면 우리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위치는 좋으나" 즉 매우 그럴 듯한 조건을 가지고 있고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으나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지는 , 다시 말해서 그 좋은 환경 등이 사실상 해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인생"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교육을 통해, 상담을 통해, 보다 나은 환경을 통해 그에게 참 생명을 공급할 수 있습니까? 조금 나아지게 할 수는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큰 안목으로 보면 그 '나아짐'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일들이 무가치하고 쓸데없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작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리고의 불행이 물 근원을 고침으로 해결 되듯이 인간의 모든 이와 같은 불행도 생명의 근원을 고침으로 해결됩니다. 생명의 뿌리가 하나님의 은헤에 닿아 있어야 합니다. 시1:3을 보십시오. "의인은 물 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물 가'에 심기었다'는 말은 직역하면 물(혹은 강, stream) 위 (on)에 심기었다는 뜻입니다. 물 위에 어떤 식믈을 심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땅 밑을 흐르는 큰 물줄기 위에 심긴 것을 말합니다. 그 뿌리가 땅 아래로 파고 들어 물줄기에 닿았다는 것입니다. 풍성한 물이 흐르는 곳에 뿌리가 닿으면 가뭄이 와도 그 잎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척박한 곳에 심기어진 나무는 외적 조건에 매우 큰 영향을 받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내주가 시작됩니다. 물 근원이 고쳐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 안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들어 있고 무엇보다 그 분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이 들어있습니다. 이것 없이는 누구도 여리고의 불행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내가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을 이루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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