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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안식


목회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지쳐갑니다. 이론 대로라면 날마다 새 힘을 공급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아침마다 새 힘이 솟아나야 맞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것과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매주 설교를 몇 편 씩 하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성도들과의 상담에서 최선의 길을 보여주고 싶은 열정이 에너지를 소모하게 합니다. 또 교회의 양적 성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목회자의 가족들과 성도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긴장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이나 사업을 하는 성도들에 비해 비교적 편한(?) 생활을 한다는 보편적 인식 때문에 "힘이 든다"는 표현이 사실상 어렵습니다.

이 피곤함을 해소해 보기 위하여 여러가지를 시도할 것입니다. 좀 활발한 목회자들은 조기축구나 등산, 또 틈날 때마다 여행도 해 볼것입니다. 비교적 활발하지 않은 성격의 목회자들은 가장 손 쉬운 휴식으로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누워있다 시피 하는 것, 독서, 혹은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 목회자들과 대화가 편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면 몇 날 며칠 기도원에서 두문불출 하며 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는 기대한 것 만큼 활발하게 움직여지지도 않고 또 성장하지도 않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어려워지는 수도 있습니다. 피곤을 점점 누적되고 마침내 탈진 상태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탈진이란 몸져 눕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의욕 상실"로 나타납니다. 아이디어도 떠 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서 새로운 것이 생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조치도 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정도의 의욕 마저도 사라집니다.

이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려면 목회자에게는 안식(sabaath)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안식이란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거나 여행이나 다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7일 째 안식 하셨다고 할 때 그 안식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일 하시느라 너무 피곤 하셔서 하루를 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곤치 않으신 분"이시며 그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이란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며 줄거워 하시고 그것을 사용하시기 시작 하였다는 뜻입니다. 마치 집을 짓는 자가 완공한 후 그것을 보면서 흡족해 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이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새로운 차원의 일이란 지금까지 늘 하던 것을 잠깐 멈추고 새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의 안식과 재충전

필자가 권하는 안식은 이런 것입니다. 목회자 자신이나 성도들은 목회자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익숙하게 하는 자 들이기 때문에 "혼자서도 알아서 잘 할 것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있어서 누군가의 (그 누군가는 목회자)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목회자들에게도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새로워지기 위하여는 외적으로 신령한 것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외지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이런 것을 공급 받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국내의 목회자들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터넷 등을 돌면서 유명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충족 되지도 않습니다.

필자가 권하는 안식의 방법은 다음 세가지 입니다. 첫째, 멘토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멘토와 함께 평생 같이 갈 동료들과 함께 목회의 짐을 같이 지는 것입니다. 방안 공기가 탁하면 선풍기 돌려서 되는 것이 아니라 창문을 열고 밖의 바람으로 환기를 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만나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일에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필요하면 상담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다고 '정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 과정에서 얻어지는 치유는 매우 좋은 결과를 가져 옵니다,

둘째, 안식년(혹은 형편 상 안식월이라도)을 갖는 것입니다. 몇 달이라도 목회지를 잠시 떠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사명감이 있는 목회자라면 이 기간 동안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새삼 확인 됩니다. 마치 애정은 여전하지만 서로 자주 투닥 거리던 부부가 잠시 서로를 떠나 있으면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역효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목회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또 가르침을 받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재 확인됩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 좀 지쳐서 소홀해 졌던 것들이 생각나면서 재 충전 혹은 전열을 다시 가다듬는 계기가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안식년(안식월) 동안 새로운 목회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다른 교회에서 예배 드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조금 후에 말씀 드리겠지만 나름대로 형성된 습관은 그 습관이 형성되는 기간 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려야 고쳐집니다. 자칫하면 우물안 개구리 처럼 됩니다. "새로운 것"이 뭐 있겠나 싶은 생각도 하지만 새로운 것은 항상 있습니다. 이것은 유행에 민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옛것을 고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옛것 뿐 아니라 자기만의 멋에 빠진 세련되지 못한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습관은 개성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것은 매우 우스꽝스러운 촌스러울 뿐인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유행에 민감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것은 오히려 교회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촌스럽거나 세련미가 없는 것이 좋은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에게 쓴 소리 하는 성도는 별로 없습니다. 목회자의 부인들이 모니터링을 하는 경우는 있으나 역시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에 빠져드는 나르시즘(narcissism)의 덫에 걸릴 수 있습니다.

고착화 된 습관들

"보는 것이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진리에 가까운 말입니다. 필자는 은퇴 후 비교적 많은 교회에 출석을 해 보았습니다. 작은큰교회 사역을 위하여 그렇게도 하지만 설교 약속이 없는 주일에는 집 근처 교회에 갑니다. 그 중 매우 훌륭하다고 느낀 교회도 있으나 그 중 몇 교회는 큰 문제가 보였습니다. 세 교회의 예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 세 교회의 특징은 4-50 대 아래로 보이는 성도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고 예배 내내 조는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필자가 가장 뒤쪽에 앉아 있어서 관찰할 수 있었음). 셋째 거슬리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제 그것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교회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믿음이 없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어보였습니다.

첫번째 교회입니다. 예배 15-20 분 전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당 입구 쪽 안내 위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웃고 떠들고 .. 본당 안에 몇 명이 있었는데 그들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조금씩 더 들어오면서 매우 소란스러웠습니다. 전자 올갠(신디사이저가 아님)이 연주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베이스 볼륨이 너무 커서 멜로디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고 그 음색도 잘 못 골랐는지 아니면 연주자의 취향이 그런 것인지 모르나 너무도 탁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 올갠 연주는 예배를 돕기 위한 것이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여전히 서로를 큰 소리로 부르고 웃고 잡답 하고 있었습니다.

11시가 되었는데도 예배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강단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11시 5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담임목사가 강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긴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매우 길다고 느껴졌습니다. 기도가 마치자 마자 찬양을 하였습니다. 목사가 음을 잘 못 잡았는지 올갠이 그 음에 맞추느라 잠깐 동안 엉뚱한 소리를 냈습니다. 여전히 베이스 볼륨이 너무 크고 아까 들었던 그 똑같은 탁한 음색으로 반주를 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복음성가를 서너번을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전의 기도는 예비, 지금의 기도가 예배의 시작인 개회 기도인 것 같습니다. 이 역시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기도 마치자 또 찬송가를 서너번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또 찬송, 4절까지 있는 찬송을 또 두 번 반복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안수집사의 목회기도가 이어졌습니다. 그 분은 혀가 대단히 짧은 소리를 내었습니다. 역시 그 기도도 매우 길었습니다. 아마도 써 가지고 나온 것을 읽는 것 같았는데 알아 듣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또 찬송을 두 번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찬양대는 없었습니다. 광고 시간입니다. 광고라기 보다는 목사님의 잔소리 시간 처럼 들렸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흐르고 설교는 11시 40분 좀 넘어서 시작되었습니다. 시계를 봤더니 12시 10분, 아직도 서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하겠습니다.

두번째 교회의 예입니다. 이 교회의 목사는 60 세가 조금 덜 된 것 같았습니다. 이 분은 말하는 습관이 매우 독특하였습니다. 대여섯개의 단어로 구성된 문장이 있다고 하면 첫째와 두번째는 크고 굵고 천천히 그리고 나머지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게 그리고 재빠르게 흘렸습니다. 붓으로 무엇을 표현한다면 처음에는 굵고 힘있게 그러다가 잠시 후에는 가볍고 날렵하게 삐치는 것과 유사할 것입니다. 모든 말을 다 이렇게 하였습니다. 찬송가를 부를 때도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대고 이런 식으로 불렀습니다. 나름대로 멋이 그렇게 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귀에는 매우 우스꽝스럽게 들렸습니다. 필자가 어릴 때 극장 등에서 보던 매우 저렴한 쇼의 사회자 말투였습니다. 아마도 그 교회 성도들은 익숙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의 "저항"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에 젊은 사람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설교할 때도 그런 방식으로 원고를 읽었습니다. 왼 손에 원고를 들고 노골적으로 3-4분 이상 머리 한 번 안들고 읽어내려갔습니다. 문어체를 그대로 옮겨 읽는 것을 보면 자신이 만든 원고라기 보다는 어떤 것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냥 책 읽듯 하기가 뭣 하니까 그런 리듬(?)을 넣어서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 말투로 하는 설교를 처음 듣는 자는 그 내용이 들리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톤 때문에 당황할 것이 분명합니다.

세번째 교회의 예입니다. 예배 후 문에서 인사나눌 때 가까이서 보니 목사님은 50세를 조금 넘긴 것으로 보였습니다. 나름대로 설교를 열심히 하면서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는 열정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설교 내내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큰 실례입니다. 검지(두번째 손가락)만 펴서 누구를 지적하는 것을 "손가락 질"이라고 합니다. 어느 방향을 가리킬 때도 손가락은 다 펴서 손으로 해야 합니다. 검지를 펴서 동서남북으로 찌르며 성도를 가리키며 설교하였습니다. 아마도 역시 누군가 이런 것을 지적해 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 외에 다른 곳에 강사로 가서도 그렇게 하면 매우 큰 저항을 받을 것입니다.

이 분은 노래를 꽤 잘하는 분이었습니다. 찬송을 할 때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리드를 하는데 소위 "오브리가토"를 잘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다른 성도들이 우물쭈물 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브리카토 치고는 너무 큰 소리로, 마치 그것이 주 멜로디인 것 같이 들리게 하였습니다. 60 대 이상의 여성이 대부분인 교회에서 이와 같은 것은 생뚱스럽고 분위기에 맞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대충 3-40명이 있었습니다.

가장 문제는 "할렐루야"였습니다. 이 분은 이것을 습관적으로 하였습니다. 문장으로 치면 한 두 문장 지나면 습관적으로 '할렐루야'가 나왔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할렐루야는 더 이상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무게 있는 말이 아니라 그저 말과 말 사이를 잇는 추임새였습니다. 그 중에 때로 " ---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맨 앞 줄에 앉아 있던 어떤 노년의 여성도가 "아멘"을 구호처럼 지나치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수 없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할렐루야와 아멘의 수난이 이어졌습니다. 아마 이를 지적하면 자신이 정말 그랬는지 놀랄 수도 있고 혹은 할렐루야 하는데 무슨 문제가 되냐고 할 지도 모릅니다. 다른 성도들은 설교 마칠 때까지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켰습니다.

누가 봐도 세련되게 보이지 않고 뭔가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은 "개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개성을 따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예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개성이 방해되면 자신의 개성을 포기해야 맞습니다. 위의 세 교회의 공통점은 매우 촌스러운 멋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공통점은 "예배 중" 앞뒤좌우를 보며너 인사를 나누라는 것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교제를 돕거나 혹은 경직될 수 있는 예배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예배 분위기 혹은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 교회가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성도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면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오래 전에(요즘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114등에 전화번호 문의를 하려 하면 교환원이 나와 "고객님 사랑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솔"음에 맞춘 비교적 높은 음으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마도 고객을 위한 봉사 차원에서 기분 좋게 하려고 누가 그런 아이디어를 내었겠지요. 그러나 그 말을 들으면서 그 교환원이 진정으로 고객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저 상업적 멘트일 뿐입니다.

앞뒤좌우의 성도 중 에는 얼굴이 익은 자들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말 한마디도 진심을 담아서 해야 합니다. 예 혹은 아니오가 맹세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주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합니다"를 말하라는 것은 건성으로 좋은 말을 남발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이나 다름이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는 예배 전 후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집중을 방해하는 어떤 것도 좋은 것일 수 없습니다. 어느교회에서 하던 것이 유행처럼 번져 너도 나도 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 아닙니다. 이런 문제도 한 번 비판적으로 잘 살펴보며 평가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가운데서 장점이 많으면 그대로 혹은 좀 더 발전된 형태로 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예배 분위기를 밝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교회에서 배울 점

자신이 목회 하던 교회를 잠시 떠나 비교적 "잘 짜여져있다"는 교회를 방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정서로서 이를 평가하지 말고 '예배학"적으로 비판( critic )해 보시기 바랍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이 목회 하던 교회의 그것과 비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자신의 설교 동영상도 비판적으로 보시기 바라고 예배 진행 방식이나 기타 환경을 엄격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될 수 있는대로 (기존 교회 목회자가 그렇게 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은 없지만) 가능하면 인턴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각 부서를 견학 하면서 이를 평가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저 가서 예배 만 드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이와 같은 요청을 거절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 나라 교회에 이런 신선한 바람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

이런 것이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먼저는 금전적인 면입니다. 사실 한 달이고 두달이고 그 이상 교회를 비우려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능숙하게 메꾸어 주어야 합니다. 작은교회살리기 연합에서는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자 역시 조기 은퇴를 하고 작은 교회들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는데 그 사역 중의 일부가 이런 것입니다. 안식년이나 안식월을 원하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망설이시는 분들은 얼마든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든지 다 무료로 하실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이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다시 돌아왔을 때 성도들이 "그 전과 같이 환영 해줄까?" 하는 약간의 염려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간혹 안식년 후에 곤란한 일을 당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안하는 안식년이나 안식월은 담임목사가 멀리(해외나 먼 지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면 일단 주일 예배 만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심방이나 수요일, 금요일 기도회 혹은 새벽기도회 등은 담임 목사가 그대로 맡아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큰 문제가 없으며, 혹은 먼 지방이나 외국에 나갈 경우도 그 빈자리를 메꾸는 자들이 이를 인식하고 있으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주께서 원하시는 최고, 최선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비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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