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Join My Mailing List

사르밧에서(3)


사르밧에서(3) 왕상 17:17-24

“농부의 쟁기질은 밭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당연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에 대하여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을 도와주는 말입니다. 땅을 깊이 갈아엎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 이런 쟁기 날이나 삽날이 깊게 들어오면 참 고통스럽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뿌려진 생명의 씨가 무성한 가지를 뻗어 올리게 하고 그것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르밧 여자의 집에서 이런 일이 또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그 아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본문 내용의 흐름으로 보아 오랫동안 병을 앓은 것이 아니라 갑자기 발병하여 급속히 나빠지다가 숨이 끊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본문으로 설교 하면서 제목을 “이건 또 뭔가?”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이건 또 뭔가?”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 넘었더니 강이 나오고 강 건넜더니 또 산이 가로막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C S 루이스의 말을 잘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가 당하는 고통에 의미가 없다면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을 다시 하면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의 고난은 반드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빼앗아 가시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것

어느 부모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사르밧 여자에게 있어서 아들은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 아마도 그 여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유도 이 아들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가루통과 기름병을 마르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 그 생명은 지켜주시지 못하시는가? 안팎으로 고생이 많았을 사르밧 댁이 아직도 당해야 할 고통이 남았는가?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가져가시는 것”이 아니라 “주시기 위한”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겪은 고생이 아직 좀 모자라서 이런 시련이 더 해지는 것인가? 모자라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생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복을 아직 덜 받은 것입니다.” 가루 통과 기름 병의 복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 주실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불가피한 시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삶에 쟁기를 더 들이대시는 것입니다. 삽 날이 깊게 들어와 깊이 갈아 엎어야 더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기름 병과 가루 통의 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사십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를 먹습니다. 이것은 아침저녁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접하는 것입니다. 거기다 메추라기까지 진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끊임없이 불신앙적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서 죽었으면 좋을 번 하였도다.” 그냥 생각하기에는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이 그렇게 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더하시는가?

이 여자는 엘리야에게 원망 비슷하게 보이는 말을 합니다.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죄를 생각나게 합니까?” 이 여자는 아들의 죽음과 자신의 죄를 연관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은 아닙니다(요9:2 참고). 여기서 말하는 죄(sin)는 누구도 알 수 없게 지었던 과거의 어떤 죄행(허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돈을 떼어 먹었다든가 누구를 때렸다든가 하는 그런 죄행은 주로 <죄들(sins)>라는 복수형으로 나타납니다. 단수로 기록된 것을 보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식” 혹은 “죄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인 것 같습니다. 가루 통이나 기름 병의 기적만으로는 하나님을 충분히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엄청난 복을 누리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비례합니다. 하나님의 복이 형용할 수 없이 쏟아져 내리는데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항상 “받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누릴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 나의 죄, 주홍보다 더 붉은 죄를 알고 애통하고 또 그 죄가 은혜로 사하여진다는 진리를 온 몸으로 알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르밧 댁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엘리야는 지금 수배를 당하는 몸입니다. 마음대로 밖에 나가 다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17:15에 “여러 날 먹었으나 가루 통에..... 다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여기서 “여러 날”은 히브리어 ‘야밈’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이런 정도의 시간이 아니라 일 년, 이년 이런 정도의 비교적 긴 시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엘리야가 그 비교적 긴 시간 동안 그와 함께 살면서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건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에 대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왜 여호와만 하나님이신가, 그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은 어떤 것인가... 보지는 않았지만 엘리야도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그 시간에 연예인 이야기로 속절없이 시간을 보냈겠습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을 제대로 설명하고 보여주면 그것을 듣거나 보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확실한 반응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위대하심 앞에 그냥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머리를 숙이게 되고 무릎을 꿇게 되고 마침내 온 몸을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증스럽고 타락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끼지 않고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도무지 헤아릴 수 없이 크신 은혜! 가루통과 기름 병을 마르지 않게 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이 “한량없는 은혜”라는 것을 알고 그 앞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은 경험이 없으면 과연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죄!" 그 죄의 깊이와 이것을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 한 존재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귀히여기시는 그 놀라운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사르밧 여인에게 이 아름답고도 놀라운 복을 주십니다.

하늘에서 뜻이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엘리야는그 죽은 아들을 달라하여 안고 다락방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살려서 다시 내려왔습니다. 그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선지자에게 주고 살아난 아들을 돌려 받았습니다.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에서 눈여겨 볼 것은 “어머니가 그 아들을 엘리야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넘김” “맡김”의 원리가 떠오릅니다. 죽은 자식 계속 품에 안고 있으면 그 결과는 썩는 것입니다. 하루 안고 있으면 하루만큼 썩고 이틀 안고 있으면 이틀만큼 썩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넘겨드려야 합니다. 맡겨야 합니다.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려면 맡겨야합니다.

다락방에서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여인의 위치에서는 다락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위층에서 “살아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 위,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는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 일이 땅위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믿고 맡기는”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잠 16:3, 시37:5).

이제야

이 여자는 그 전에도 그는 가루통과 기름병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또 다른 차원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라는 말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육신의 삶을 마감할 때까지 사람은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근본적인 문제에 흔들림이 없는 수준의 믿음에 도달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고통을 주거나 무엇을 뺏어 가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런 엄청난 것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렐루야를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의하기

 

작은큰교회프로젝트

rev-hur@hanmail.net

010. 3813.9041

© 2017 by Churchmentor.org 

이름 *

이메일 *

제목

메시지

This site was designed with the
.com
website builder. Create your website today.
Star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