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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밧에서(1)


사르밧에서 왕상 17:8-15

저는 청소년 시절에 미국의 특수부대인 그린베레(초록색 베레모) 홍보 비디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체격이 매우 크고 좋은 청년들이 매우 혹독한 훈련을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배경음악으로는 “백 명이 지원했으나 세 명 만 뽑혔다”는 내용의 당시 제법 알려진 곡이 사용되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지원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저와 친구들은 그 훈련과정을 보면서 “너무도 호된 훈련 때문에 아무도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비디오도 보여주었던 미군과 관련된 그 분의 이야기는 그 반대였습니다. 그 훈련의 결과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을 보고” 홍보를 하기 전보다 두 배에 가까운 미국 청년들이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엘리야의 특별 훈련과정을 우리에게 공개하십니다. 어떻게 엘리야가 갈멜산의 그 놀라운 일과 그 후의 일들을 해 낼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이미 선지자였습니다. 이미 선지자였다는 것은 그가 어느 정도의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훈련이 더 필요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훈련을 통해 교정(校正)되어야 합니다. 죄 아래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 아래로 옮겨지면 당연히 하나님의 세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런 훈련의 특징을 보십시오.

극기 훈련이 아닌 신앙 훈련

어떤 분은 극기 훈련은 신앙 훈련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극기 훈련은 담력을 키우고 지구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유익이 있습니다. 신앙훈련은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배우고 체험하는 것으로서 극기 훈련과는 (억지로 연관지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관계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훈련이나 예배가 극기의 일종이라면 정말 비극적이라 할 것입니다. 예배가 극기 훈련이라... 참 비참한 교회라 생각됩니다.

극기 훈련을 통해 형성된 담력이나 집중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혹은 어떤 산과 같이 큰 사건을 만나면 그 앞에서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릿 시내가 마르듯이 말라버립니다(왕상 17:7). 요 2장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 같이 다 소진됩니다. 결혼 잔치에는 항상 남아돌 정도의 포도주가 준비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바닥을 보이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충성과 열정도 어처구니없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모세의 그 온유함도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인내도 결국 바닥을 드러내 하갈을 맞아 이스마엘을 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극기 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결코 다함이 없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 풍성함을 공급받아야 하는 법을 배우는> 믿음의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머리 뿐 아니라 오장육부, 혈관, 내장 .. 모든 것으로 배워야 합니다. 엘리야는 그릿 시내에서 그것을 배우고 또 사르밧으로 보내어졌습니다. 그릿에서는 까마귀 뒤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배우고 이제 여기서는 “빈곤 속의 풍요”를 보이시는 하나님을 배우게 됩니다.

사르밧

본문에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엘리야가 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돈은 현재 레바논 땅의 일부입니다. 갈릴리 호수 서북 쪽 지중해 연안의 별로 높지 않은 산에 시르밧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렙다”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곳의 두 가지 명칭입니다. 이곳은 시돈이라는 곳에서 10 Km 정도 남쪽인데, 중요한 것은 여기가 바알신의 소굴이라는 것입니다. 아합의 부인 바알신의 전도사 이세벨이 여기 출신입니다. 이스라엘 경내에는 그래도 혹시 엘리야를 봐도 신고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엘리야가 눈에 뜨이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은 호랑이 굴로 그를 들여보내셨습니다. 이 명령을 들은 엘리야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를 충분히 보호하실 수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보내어 훈련의 효과를 높이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가난한 과부에게 보냄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성문에서 나무를 줍는 과부를 봤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람인가 확인해야 합니다. 물을 좀 달라하고 먹을 것을 요청합니다. 그 과부는 매우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를 위하여 그 말대로 하였습니다. 만약에 이를 거절하면 그 여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사람이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근의 날에도

확실히 거기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종이 있었습니다. 두려워말고 “먼저” 나를 위해 떡을 가져오라는 말에 놀랍게도 그 과부는 그대로 하였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하고 불쌍한 여자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 결과 그 집에 가루 통에 가루가 다 하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다 하지 않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늘에서 오는 만나처럼 계속 채워졌습니다.

하나님은 “빈곤 속에 풍요”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빈곤이란 없습니다. 모자람 같은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환란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시37:19)”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시33:19)”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심으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수를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가장 빈곤하고 어려울 때 조차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의 삶은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 이 풍요는 바알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삶의 영역에서도 그러하지만 영적인 삶 역시 그러합니다. 시92:12-15에는 “하나님의 궁정에 심기운 자는 늙어도 진액이 마르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함을 나타내는도다”라고 선언합니다. 늙으면 모든 진액이 마르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늙어도 진액이 마르지 않는 삶이 보장됩니다.

사르밧에 나타난 주의 영광

엘리야는 그릿과 사르밧에서 고생만 한 것이 아니라 “주의 영광도 함께 봅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기근으로 덮이고 아우성을 쳐도 하나님의 기름병은 마르지 않습니다. 가루 통은 “넘치지는 않을지는 몰라도 결코 바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빈곤 속에서 풍요를 보고 빈곤 속에서 주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살 수 있습니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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