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Join My Mailing List

기적(1) 예수의 기적은 사실인가 신화인가?

#기적 #신화 #전설 #정경 #복음


예수의 기적은 사실인가 신화(神話)인가?

사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기적이 35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20회, 마가복음에는 18회, 누가복음 20회, 요한복음 9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 없는 기사가 많고 나머지 복음서는 같은 내용을 약간씩 다르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보이신 모든 기적을 다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주께서 행하신 기적 중에서 복음서 기자들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나름대로 발췌하여 묘사를 한 것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이 예수님의 기적의 의미를 시리즈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이 기록들은 믿을 만한 것인가?

과연 이런 기록은 믿을 만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일어납니다. 현대인들이 원시인이 아닙니다. 그래도 과학이라는 것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들인데 “사람이 높은 파도가 치는 물 위를 걸어갔다, 또 죽은 자를 무덤에서 불러냈다"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기적을 믿으라고 하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그냥 코 웃음 치면서 무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렇다고 종교를 무시하기에는 그만한 결단이 서지 않아서 자기 내면에서 적당히 타협을 하는 것입니다.

그 타협이란 이런 기적을 일종의 신화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군신화, 주몽 신화, 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 같은 것을 말합니다. 신화의 내용이 정말 역사적 사실이냐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신화라는 말은 본래 그리스어로 “이야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경우가 많음으로 “신들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신화라는 말 대신 전설이라는 말을 써도 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독일에 불투만(1884 -1976)이라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볼 때 사복음서의 기적은 사실이 아니라 “신화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사람의 사고방식은 당시 유행하던 합리주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인간이 말하는 “합리”의 밖에 있는 것임으로 그는 이렇게 밖에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불투만의 비신화화(非神話化)

그는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믿은 것을 그렇게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믿는 사람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의 베드로나 바울, 나자로의 여동생들이나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 같은 ‘그 사람들이 믿은 그것’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투만이라는 사람은 사 복음서에서 사람들이 고백한 예수가 아니라 진짜 역사적 예수가 하신 일과 말씀하신 것을 찾기 위해서는 복음서 안에 있는 신화적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을 불투만의 비신화화라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따르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별별 공격을 다 받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중에 현대에 받는 공격 중 매우 강렬한 것 중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이런 사고를 따르는 신학자들이 중에 ‘예수 세미나’라는 그룹이 있는데 (이들 주장이 지금은 어디까지 갔는지 모르겠음) 약 20여년 전 발표에 따르면 사복음서 중에 진짜 예수의 말씀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나머지는 “그가 그렇게 말했다” 혹은 “그렇게 행하였다"라고 하는 전설이나 신화적인 사건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은 사실인가?

예수님의 기적이 사실이라고 하면 아마 어떤 분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당신이 봤소?” 실제로 여러분 주변에서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안 믿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한 번 일어난 사건이 또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매우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면 일어났지 ‘그 사건’이 또 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난 어떤 사건도, 또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은 모두 다 단회적(單回的)인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든지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로 가봐야 아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남아 있는 ‘증거’ 혹은 ‘단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증인들의 증거

가장 확실하고 큰 증거는 “많은 증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유대인은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없는 사건이나 여성이 증인으로 나서는 송사는 아예 받지를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역은 항상 공개적이었습니다. 공개적이었다는 것은 많은 증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태 17장, 마가 9장, 누가 9장에 있는 변화 산 상에서 예수께서 영화로운 몸으로 변형 되셨던 사건이 (이일을 기적에 포함시킨다면) 그중 증인의 수가 가장 적었던 것인데 그때 증인은 3명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최소한 12제자가 동행 하였고, 또 12 제자 외에 수종 드는 자들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목격자가 가장 적은 경우입니다. 기적을 다룬 대부분의 기사를 여러분께서 눈여겨보시면 현장에는 “수많은 증인”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그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증인입니다(요 2:1-11). 혼인잔치에는 항상 어느 때보다도 않은 사람이 모여듭니다. 그 후 바로 그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그 지역인 가나에서 왕의 신하의 들의 병을 고치신 일이 있습니다(요 4:46-57). 이것은 다 공개된 사건입니다. 벧헤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일도 그렇습니다(요 5장). 그 행각에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막 1:23-28에서는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막 2:3-12에는 중풍병자가 깨끗함을 입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예수께서 계신 집에 하도 사람이 많이 몰려서 이 환자를 예수 앞에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어 지붕을 뚫고 내렸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막 5장에는 역시 가버나움에서 예수님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누가 예수님을 밀어도 누가 미는 지도 모르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12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여자가 그 사람들의 장벽을 뚫고 들어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나음을 얻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는 그 떡을 오 천 명이 먹었다고 했고 칠 병 이어 기적 때는 사천 명이 먹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골방이나 동굴 속에서 은밀하게 행하여 진 것이 아닙니다.

이 증언이 사실인 증거들

첫째, 증인들이 서로 짠 것이 아닌가?

제자들을 포함한 증인들은 모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서로가 한통속이 되어서 말을 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상이 맞는 말이 되려면 다음의 것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런 시도가 있었다면 그 증인들이 일사불란한 통제 아래 있어야 합니다. 계속 나타나는 변화무쌍하고 의심 가득한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이 그들에게 계속 공급되어야 최소한 그런 질문을 잠재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기적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 중 몇은 파악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누가 있었는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증인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오늘날처럼 수시로 연락을 취할 수 있던 때가 아닙니다. 이 증인들은 어떤 형태로 조직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조직을 이끌 만한 사람도 초대 교회에는 없었습니다.

둘째, 혹시 일상적인 일들이 기적으로 과장된 것은 아닌가?

만약 4 복음서 중 예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하여 거짓 정보가 들어 있었다면 ‘정경(正經, Canon이란 말로 거짓 성경을 가리키는 위경 혹은 가경과 반대)’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릴 때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 부활하신 후 500명에게 일시에 보이신 적이 있는데 그중에 태반이 아직 살아있다(고전 15:6).”는 바울의 증거입니다. 이 500 명은 12사도는 아니지만 예수님을 가까이서 섬겼던 자들 입니다. 주께서 부활하신 후 어떤 장소에 모여서 기도하던 자들 입니다. 태반이란 과반수라는 뜻이 아니라 “거의 다”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세워진 교회의 지도자 급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구약 성경은 있어도 신약 성경이 오늘날처럼 완성된 형태로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단편 문서들이 돌아다닐 때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의 임무 중 하나가 그 많은 서신들 중 어떤 것이 “성령께서 감화하셔서 기록한 것인지 가려내는 것”입니다. 이들이 그 작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사실성, 정직성입니다. 인간적인 어떤 것이 가미되었다면 그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문서들 중에는 예수를 높이기 위하여 없던 일을 지어낸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과장된 의미를 부여한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물론 그 동기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려는 어떻게 보면 기독교에 유리한 정보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된 요소가 들어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가경 이러합니다. 또 실제 저자와 문서에 기록된 저자가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위경(僞經)이라 합니다. 그 수많은 문서 중 현재 신약 27권만 정경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들이 결정한 정경은 아니지만 후에 모인 공의회에서 정경을 택할 때 주로 이들이 정경으로 인정한 것을 승인하는 정도였습니다. 만약에 그 기록에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 과장이 있다거나 사도들이나 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으면 성경에 편입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누가 보거나 들어도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늘 보던 것,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이미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이라는 것 그 자체가 벌써 의심을 사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의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셋째, 신앙심으로 인하여 전설화 된 것은 아닌가?

신화나 전설이 형성 되려면 장구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예수 부활 승천 후 짧게는 30 년 전후의 시기에, 요한복음과 계시록을 제외한 신약의 대부분도 이 기간에 기록됩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사도행전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끝은 바울이 로마 옥에 호송된 사건으로 마쳐집니다. 이것이 기원후 62년 경입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그 속편으로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은 사도행전이 기록되기 몇 년 전에 기록 되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신학자나 거의 다 말하는 것 중 하나가 복음서 중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누가복음보다 앞서 기록된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로 봅니다. 요한복음은 좀 나중에 기록된 것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예수님 승천 이후 불과 30년 전후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 사이에 신화화, 전설화 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목격자들 중 태반이 살아있는데 이것이 전설화 될 이유가 없습니다.

넷째, 기적에 대한 반대토론은 거친 것인가?

이것은 소위 반대자의 "검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질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사역을 할 때에 이미 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요1:19).” 당시는 종교적인 지도자라고 자칭 하든지 혹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하는 자가 출현하면 반드시 조사를 하였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마 15:1에도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람들이 내려왔다"라고 합니다. 조사하러 나온 것입니다. 이후에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바리새인 서기관, 게다가 헤롯 당원 들까지 예수님을 사찰하였습니다. 그리고 공격하고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하실 때부터 많은 기적이 동반되어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고 꾸준히 이에 대한 사찰이 이어져 왔습니다. 만약 기적이 조작된 의심을 가졌다면 그 자체의 허구를 증명하려 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을 때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바알세불이 지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막 3:22; 마 12:24). 이것은 예수께서 기적을 행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만약에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소문만 있었다면 이것은 참 쉽게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기적 행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 은혜로 소경이 눈을 떴다고 합시다. 그 소경을 조사하면 됩니다. 이들은 조용히 숨어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서 발생 하였는데 어떻게 침묵하고 있을 수 있습니까? 동네방네 다니면서 말할 것이고 또 그가 소경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들 앞에 눈을 뜨고 서 있기만 해도 됩니다.

행 3장에 성전 미문 앞에 있던 걷지 못하던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당시 당국자들이 모여서 어떻게든 이 사실이 가져다주는 파장을 막거나 줄이기 위하여 논의를 했으나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이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 “ 결국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라고 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3:16). 예수께 기적적 치유를 받은 당사자들에게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반대하고 흠잡고자 하는 적들도 그의 기적을 부인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론

기적이라는 것을 믿기는 어렵지만 예수의 기적은 일단 공개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깊은 굴 속이나 은밀한 곳에서 일어난 것을 누가 전한 것이 아니라 사건 현장에는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기적을 미화하고 더 위대하게 보이기 위하여 과장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설 화 되기는 그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전설은 보통 구전의 긴 기간을 거쳐서 기록되는데 불과 30여 년 전의 일을 전설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여기에 거짓된 것이 들어 있었다면 당시 흩어진 교회의 지도자들인 그 증인들이 그 기록을 성문 서로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당시 지도자들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아닙니다. 그 기적을 통하여 예수께서 메시아 임을 믿는 것과 또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하여 무엇을 해 주실 수 있는지를 알고 그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 기적의 하나님이 지금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문의하기

 

작은큰교회프로젝트

rev-hur@hanmail.net

010. 3813.9041

© 2017 by Churchmentor.org 

이름 *

이메일 *

제목

메시지

This site was designed with the
.com
website builder. Create your website today.
Start Now